1912~19년까지 불교잡지에 150회 131편 발표하며 불교 언론에서 크게 활약한 선암사 예운 혜근 스님 > 교계소식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불교태고종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 교계소식

    1912~19년까지 불교잡지에 150회 131편 발표하며 불교 언론에서 크게 활약한 선암사 예운 혜근 스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조계산선암사
    댓글 0건 조회 4,310회 작성일 21-11-27 09:56

    본문

    • 정병삼 명예교수, 동국대 ‘불교학보’ 제96집서 "근대불교의 변화와 개혁을 개척한 선봉자"
    •  "예운 혜근스님은 강학의 본고장 선암사에서 청년기를 지내며, 침명-함명-경붕, 청공 벽파 금암 등 여러 선학들로부터 전통불교의 요체를 체득하였다. 1912년부터 1919년까지 8년 동안 5종의 불교 잡지에 모두 150회에 걸쳐 131편에 이르는 많은 글을 발표하여 조선불교의 개명과 불교인의 각성, 청년의 교육과 불교에 토대를 둔 미래 개척을 주장하였다."
       숙명여대 정병삼 명예교수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제96집에 선암사 예운 혜근 스님(猊雲惠勤, 1851-1919 이후)을 조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정병삼  명예교수는 "예운은 1910년대에 불교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912년에 《조선불교월보》 11호부터 글을 싣기 시작하여, 1919년 《조선불교총보》 제15호까지 8년 동안 불교 언론에서 크게 활약하였다."고 밝혔다. 
       정교수는 또 "예운은 전통불교의 뛰어난 식견을 바탕으로 근대불교의 변화와 개혁을 개척한 선봉에 선 인물이었다. 1910년대에 불교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912년에 《조선불교월보》 11호부터 글을 싣기 시작하여, 1919년 《조선불교총보》 제15호까지 8년 동안 불교 언론에서 크게 활약하였다"며 "그러나 자신의 근대적 인식 양성의 모태였던 선암사나 다른 사찰에 터를 두지 못하고 서울에서의 불교계 잡지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스스로 매듭을 지은 결과물을 완성해내지 못하고, 세상에서 잊혀지고 마지막 생애마저 불분명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예운혜근은  이렇게 익힌 전통 교학을 바탕으로 자신이 법을 설하기도 했으며, 선 수행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컨대 전통불교의 정수를 체득하고 전수하는 역량을 갖춘 것이다. 이런 역량은 객관적으로 평가받아 1890년대에 선암사 주요 진영에 영찬을 쓰고 선암사 사적을 엮은 <옥호장>을 지어 선암사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내외전에 능통한 식견으로 선암사의 경운원기, 송광사의 금명보정 등과 교유하고, 이건창 황현 등 유학자들과도 시문으로 교유하였다며 " 이런 역량과 식견을 바탕으로 불교 역사와 교리에 정통하여, 근대 사례와 비교하며 수많은 글을 소개하여 불교의 상대적 우위와 조선불교의 굳건한 역량을 깨우쳤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수많은 글마다 조선불교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불교의 종교적 탁월성을 바탕에 두고 논지를 전개하였다."고 설명했다. 
       정교수는 "예운은 잡지에 기고한 수많은 글을 통해 불교 교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외국의 새로운 견해도 소개하며, 새로운 교육을 중심으로 불교가 근대화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 기저에는 한용운에서 보듯이 이 시기 불교계에 크게 영향을 주었던 사회진화론 사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예운 혜근스님은 선암사 관련 여러 기록을 남겼다. 1876년에 선암사 운수암 중창기를 지었고, 1879년에는 대각암 대선루 중창기, 1880년에는 대각암 영당기를 지었다. 이어 1891년에 예운은 선암사 대각암 칠성계 서문을 썼다. 예운스님은 선암사에서 시문에 뛰어나다고 인정받아, 42세인 1892년에 선암사 중창주인 도선국사와 대각국사 의천을 비롯한 소요, 침굉(枕肱), 호암(護巖), 해붕(海鵬), 태허(太虛), 대운, 문월(文月), 벽파(碧波), 철경(鐵鏡) 등 11인의 진영에 영찬을 지어 썼다. 이때 도선국사와과 대각국사 의천스님의 행장도 지었다. 예운스님은 거의 대부분의 선암사 주요 진영에 찬을 지음
      으로써, 선암사 역사를 기록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때에만 예운스님은 전당(錢塘)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저서 <옥호장>에서 예운스님은 선암사의 당우와 인물과 승경을 한데 엮어 주옥같은 시로 엮어내고 그 내력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시에 부친 기실(記實) 실록(實錄) 사실(事實) 등의 서문은 그대로 선암사의 내력을 이룬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한국불교태고종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57909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 전화 061-754-5247~5953 / 팩스 061-754-5043

COPYRIGHT © 2020 SEONAMSA. ALL RIGHTS RESERVED.